그리스도인의 연합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전서 1:10)

요즈음 많은 교회 예배당을 방문해보면, 위에 고린도전서 1:10절을 배너로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각 교회안에서 분쟁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가슴이 아픈 일이나, 우리는 교회의 연합(unity)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요즈음 흐름을 보면, 위에 고린도전서 1:10절 말씀을 마치 세상의 조직론을 적용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성경적인 연합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교회들이 세상의 조직론과 유사하게 통일된 비전에서 근거하는 통제된 외형적 모습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이러한 풍조에 따라, 많은 교회들이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새롭게 참여하게 되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하는지를 인내심을 같고 말씀으로 가르치기보다는, 각 교회의 비전, 전통을 먼저 가르치면서 세상적 조직론으로 해당 교회의 구성원이 되도록 인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교회(church)의 성경적 의미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거나, 모호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수 도 있습니다. 이전에 교회의 성경적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는 나누었기에, 오늘은 성경적인 연합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21-23)

성경적인 연합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어떠한 비전이나 사상을 통한 각 구성원들의 물리적 연합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한 영적인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1-23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나됨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을 통하여 그 연합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의 연합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으로 통일된 모습이 나타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연합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게 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양육이라는 책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어린 양들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인도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효율성을 너무 강조하다가 연합의 본질은 뒤로하고 세상적인 조직론으로 결과만을 추구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는 성경적 연합과 그 영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연합하여 살아 간다는 것은 교육이나 시스템적 접근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연합에 참여함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이러한 연합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요한 1서 2:23-2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연합”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연합에 참여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을까요?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 1서 2:23-25)

이러한 관계적 접근의 연합은 서로를 제대로 알아가고, 이해함으로 온전한 연합에 이룰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13절은 이러한 부분을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제대로 알아가는 것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The Church and The last things]에서 교회의 영적인 연합을 위해 교리적으로 연합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이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온전한 방향으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2절의 초대교회의 온전한 연합, 교제는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로 시작하고 있고, 말씀은 이러한 연합의 과정을 하나님의 영감에 따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떠한가요? 요즈음 흐름을 보면, 결과와 시간의 단축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고, 온전한 연합을 이루도록 도외 주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조직학적 접근을 통해 통일된 모습이 보여지도록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통상적인 사랑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온전한 하나됨 없는 지역 교회 간의 신속한 물리적 연합, 또는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여 하나된 모습보다는 조직학적으로 접근하여 비전과 전통의 공유로 신속한 연합을 도모하는 모습은 절대 성경에서 말씀하는 연합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충만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4:13)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2:42)

이제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연합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걸음이 예수님을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연합에 참여하는 것이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뜻으로 연합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한 몸을 이루며 그 뜻을 함께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처럼 수많은 비 진리가 대세를 이루어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진리의 허리띠를 두르고, 예수님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하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과 연합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고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어디인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임하길 소망합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또는 위에 마태복음 6:33 절을 사업장이나 집에 걸어 놓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입니까? 또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어떤 모습이며,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에 관하여 제대로 알고 있어야,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이라고 답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그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아닌가요?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church)”라고 한정하기도 합니다. 그럼 교회 밖의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가요? 물론 신학적으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이 두 생각들은 진리에 가깝게 보이지만, 진리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생각,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오직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이라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신다는 진리와 충돌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오직 교회로 제한한 두번째 생각은 중세시대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님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라고 [The Church and The Last Things]에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천국, 교회 모두 하나님의 나라의 한 부분이며,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누가복음 17:20, 21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또한 마태복음 12:28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악의 영을 쫓아낸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므로 이미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13절의 말씀 또한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명확히 정리하면,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천국, 교회, 그리고 교회 밖 세상을 포함한 모든 우주가 하나님의 나라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로새서 1:13)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하였습니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나님 나라”의 정의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나의 뜻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통치와 권위”라는 단어를 매우 억압적이고 불편한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로 인식하여, “하나님의 통치와 권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라고 충고를 받는다면, 이런 모습은 바람직한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반응들은 불완전한 인간들의 통치와 권위를 경험하였기에, “통치와 권위”라는 단어들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권위를 목회자나 영적 리더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이라는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영향때문에 오해를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완전한 모습의 왕으로 계심에도 자신들 중에서 한 명을 왕으로 세워주시길 요청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절대적인 공의(시편 33:5)이시며,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빌립보서 4:7)이시며,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절대적인 사랑의 하나님(로마서 8:32, 요한복음 3:16)이시라는 것이며,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억압적인 통치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분(요한복음 1:12)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와 권위”라는 표현에 답답함이 느껴지시나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뜻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나의 의지로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이제 정리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에게 임재하였다”라는 표현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삶 속에서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삶의 모습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순종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녀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디에 계시든지, 우리 모두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로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교회(church)”란 무엇인가?

많은 그리스도인이 흔히 “교회에 다닌다.” 또는 “우리 교회에 함께 가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언급된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이, “교회”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교회”라는 단어의 의미를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리스도인, 우리는 “교회”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교회”라는 단어는 어떠한 의미를 지닙니까?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전서 1:2)

먼저 성경에서 살펴보면, 고린도전서 1:2절에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교회의 의미와 같은 의미인가요? 즉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구별되어 성도(saints)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 또는 공간과 지역을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단어의 의미는 그 시대의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시대적 의미의 반영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교회(church)”라는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해야 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The Church and The Last Things”를 살펴보면, “교회(church)”라는 단어의 의미와 유래를 근거로 중요한 2가지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합니다. 먼저,  헬라어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교회(church)”라고 번역되는 단어는 “에클레시아 (ekklesia)”인 데, 이는 “함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또한 “church”라는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주인”을 의미하는 헬라어 “퀴리오스(kurios)”에서 유래하여 여러 변화를 거쳐 지금의 “church”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살펴보면, 결국 하나님의 임재와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위에서 살펴본 단어의 의미와 또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의미와 비슷한가요?

더 나아가, “church”라는 단어는 더 확장된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church”라는 단어를 복수형(churches)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또한 유일한 우주적인 교회(the universal church)의 의미로 표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갈라디아서 1:2절에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To the churches in Galatia)”라고 표현하며,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여러 모임을 각각 하나의 교회(church)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에베소서 2: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And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appointed him to be head over everything for the church,)”라는 말씀에서는 우주적인 하나의 교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수직적 계층구조에 익숙한 우리들은 지역의 각 교회가 넓은 의미의 교회에 수직적 계층구조로 소속되어 있고, 그 넓은 의미의 교회 머리가 예수님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성경과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지역의 각 교회는 각각의 독립된 교회로서 지역에 존재하고, 또한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 교회가 존재하며, 이 우주적인 교회와 모든 지역교회의 머리도 모두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계속 우리는 수직적 계층구조를 연상하지만,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이고 보이지 않는 유일한 우주적인 교회의 일원이며 또한 눈으로 보이는 지역교회의 일원이기도 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제 정리하면, “교회(church)”의 성경적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구별되어 성도(saints)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 즉 그리스도의 임재와 주권이 인정되는 성도들의 모임이며, 이 모임은 지역적으로 각각 독립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역 교회로 표현되고,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 몸의 일원으로 구성된 영적이고 보이지 않는 유일한 우주적인 교회를 지칭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기대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우리 모두 “교회(church)”라는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말씀에 합당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세워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Windows 10 환경에서 TeamViwer 설치하기

최근에 많은 분들이 자주 본인들의 컴퓨터의 문제를 원격으로 봐달라고 요청을 해오십니다. 원도우OS 에는 Remote Assistance (Quick Assist) 라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컴퓨터의 설정을 변경해야합니다. 이런 변경 작업은 오히려 그 분들에게 또 다른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TeamViwer]라는 편리한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친구들에게 원격으로 본인의 컴퓨에 관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해당 컴퓨터에 [TeamViwer]를 설치하는 방법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매번 전화로 설치방법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서요.^^;;

[TeamViwer 다운로드하기]

  1. 해당 사이트 https://www.teamviewer.com 방문
  2. [Download Free Trial] 버튼을 클릭한다.
  3. 해당사이트에서 보여주는 설명에 따라 설치 파일을 다운로드 한다.

[Windows 10 환경에서 TeamViwer 설치하기]

  1. 이미 다운로드한 설치 파일을 실행한다.
  2. “How do you want to proceed?” 질문에 있는 [Installation to access this computer remotely (unattended)]옵션을 선택한다.
  3. “How do you want to use TeamViewer?” 질문에 있는 [Personal / Non-commercial use] 옵션을 선택한다. 만약 상업적 용도라면 [Company / Commercial use ]를 선택한다.
  4. [Accept – finish] 버튼을 클릭한다.

[도움울 줄 친구와 TeamViwer로 연결하기 ]

  1. 설치한 TeamViwer를 실행한다.
  2. 화면에 보이는 ID 와 Password를 도움을 줄 친구에게 알려준다.
  3. 도움을 줄 친구로부터 원격연결을 기다린다.

이 포스팅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도움을 받을 분들에게 [TeamViwer]를 설치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 포스팅이 도움을 줄 분과 받을 분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더 의문사항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크롬 브라우저에 보이는 그림 밑 여백 제거하기

몇 주 전에 제 웹사이트의 메인화면 그림 밑에서 이상한 여백을 발견하였습니다. IE, Firefox, 그리고 Safari는 제대로 제 웹사이트를 보여주었지만, 이상하게도 크룸 브라우저는 그림들과 테이블 사이에 빈  공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exam_1

[Open the code that shows the issue with Chrome]

[cellpadding] 과 [cellspacing] 요소를 이용하여, 그림과 각 테이블 셀들 사이의 공간을 0으로 설정하였고, 또 이미지의 외곽선 또한 0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이 공간이 생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table width="200" height="150"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style="table-layout:fixed;">
  <tr>
   <td width="200" height="50">
     <img border="0" src="cell1.jpg"> 
    </td>
  </tr>
 ....	
</table> 

며칠 동안 이 문제를 인터넷과 책을 통하여 조사해 보았지만, 유사한 사례는 있어도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테스트해보기로 하고, 일단 모든 CSS 코드를 제외한 HTML 코드로만 테스트했더니, 그 이상한 여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CSS 코드가 이 문제를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하나씩 테스트하여, “word-break:break-all;” 구문이 크롬 브라우저에 이 여백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아내었습니다.

<STYLE TYPE='text/css'>
   body {
     word-break: break-all;
   }
</STYLE>

그러나 그 원인을 알아도, 제 웹사이트에는 그 “word-break: break-all;” CSS 구문이 필요했기 때문에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원인은 크롬 브라우저가 <img>도 inline element이기 때문에 글자들과 같이 취급하여 “word-break: break-all;” 구문이 그림 뒤에 여백을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을 “display: block;” 구문으로 block element 들로 설정하였더니, 그 이상한 여백들이 없어졌습니다.

<html>
 <head>
  <title>Example.2</title>
  <STYLE TYPE='text/css'>		
  body {
    word-break:break-all;
  }
  img.noSpace
  {
    display: block;
  }
  </STYLE>
 </head>

 <body> 
 <table width="200" height="15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table-layout:fixed;">
   <tr>
     <td width="200" height="50">
	<img class="noSpace" border="0" src="cell1.jpg"> 
     </td>
    ......
 </table> 
 </body>
</html>

[Open  this code with Chrome]

간단한 해결책이지만, 몇 주 전에 갑자이 나타난 크롬브라우저 상의 여백은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브라우저들 간 또 OS 사이에 정확한 표준이 확립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죠. ^^

모바일 사이트에서 <VIDEO/> 태그 사용하기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합니다. 이제 셀폰을 이용해 동영상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을 제공하기위해 많은 웹 프로그래머들이 고생을 합니다.

물론,  모바일 웹 프로그래밍에 대하여 경험이 많으신 분은 이미 아시는 내용이지만, 이제 막 모바일 웹프로그래밍을  접하신 분들에게 저의 경험을 통하여 도움을 드리고자 이 글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먼저,  많은 스마트폰 제조 업체가 있지만, 이제 WEB OS는 제외하고,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OS는 iOS, Android , MS-Mobile7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각 OS에서 지원하는 동영상 파일의 형식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고, 제 경험으로 H.264방식으로 코딩된 MP4파일을 추천합니다. 세개의 OS에서 모두 지원하고, 제가 동영상 인코딩/디코딩 전문가는 아니지만,  가장 만족하는 결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이H.264방식으로 코딩된 MP4파일 입니다.

두번째로는, 어떻게 웹사이트에 동영상을 연결할 것인지 생각해야만 합니다. 우선 많은 분들이 HTML 5의 < video> 태그에 관하여 궁금해 하실 것 입니다.  이 내용도 설명을 하자면 길어지지만, 우선 내용은 이렇습니다.   표준은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지만, iPhone 의 경우는 표준을 적용하고 있어서, 예제의 스크립트 만으로 동작을 하지만, android 의 경우는 버전마다 지원하는  HTML 형식이 다르고, 비디오 파일 형식도 같지 않아서, 좀 머리가 아픈 부분입니다. Android 홈페이지에 의하면, 2.1.버전 부터 HTML5를 지원을 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테스트 결과는 android  2.2. 버전 부터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android의 경우에는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하여 play() 메서드(함수)를 호출해야만, 동영상이 실행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웹페이지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HTML 5 의 <video> 태그의 기본형태는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고,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video> 태그의 기본예제]